원격 근무는 회사가 직원에게 주는 혜택이나 복지 중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근무 형태 중 하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관점을 바꾸면 더 잘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Full-remote 방식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며 그렇다고 원격 근무가 없는 On-site 근무 방식도 선호하지 않는다. 또 특정 요일에만 원격 근무하는 방식이 절충안이라 생각하고 여러 장점을 취할 수는 있지만 딱히 선호하지 않는다.
그냥 알아서 하는게 좋다. 이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Return To Office
집에서 회사로. 많은 회사들이 원격 근무를 폐지하고 오피스로 돌아간다. 코로나 시기 많은 회사들이 원격으로 일했다. 미처 준비가 안 된 팀도 어쩔 수 없이 원격으로 근무했다. 최근 몇년 동안 원격으로 근무하면서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됐다. 인사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오피스로 돌아오라는 회사가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가 안됐다.
원격 근무를 재택 근무 또는 분산 근무(Distributed work)라고도 표현한다.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Dropbox는 다르다고 한다. (출처: The crucial differences between remote work and distributed work)
개인
개인의 관점에서 원격 근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봤다.
자율성
팀의 미션에 공감하고 본인의 역할을 아는 인재는 '어디에서 근무할 때' 생산적인지 안다. 팀의 상황, 담당하는 제품의 생애 주기, 각종 시기에 따라 업무가 다른데 이에 맞춰 효율적으로 일한다. 마찬가지로 '언제 근무할 때' 생산적인지 안다. 결국 개인에게 부여되는 자율성이 생산성을 올린다고 생각하는 팀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생산적이다.
삶
회사에서 하루에 최소 8시간을 보내더라도 나머지 16시간이라는 개인의 삶이 존재한다. 그 비율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의 삶은 존재한다. 가정이 생기면서 더 중요해진다. 살면서 다양한 이벤트가 발생한다. 그러나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에는 회사에 있다. 중요한 일에 시간을 써야하는데 가장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에 일만 해야 하는 것이다. 일보다 중요한 일들이 자주 생기기 때문에 참 불편한 구조일 수 밖에 없다. 출퇴근 시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시간에 운동을 해본 적이 있는데 삶의 질이 확실히 높아졌다.
Deep work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짧더라도 본인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다. 집에 어린 아이가 있다면 오피스에 출근하는 것이 좋은 환경이다. 오피스에 출근했더니 오며 가며 여러 사람이 말을 건다면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다. 사람에 따라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장시간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타임 블록(Time block)을 확보할 수 있느냐이다.
진단
왜 오피스로 돌아가는가?
커뮤니케이션
원격 근무의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것 중 하나는 원활한 의사소통, 커뮤니케이션이다. 커뮤니케이션이란 단어는 많은 것을 내포한다. 정확히 어떤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는지 정확히 짚어야 하는데 광범위한 용어로 퉁치고 있다. 진단에 앞서 모호한 단어를 구체화 할 필요가 있다.
간단하게 동기, 비동기 커뮤니케이션으로 분류한다면 동기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문제다. 서로의 일을 인터럽트(Interrupt)하여 바로 말을 걸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Google Meet이나 Slack의 Huddle 같은 도구를 활용한다 해도 상대방이 어떤 '상황'인지 모른다. 그래서 섣불리 말 걸기 어렵다.
좀 더 구체화하면 대면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인간적 교감을 위한 대면 커뮤니케이션 말고는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원격 화상 도구들로 충분히 의사소통 할 수 있다. 여차하면 통화로 빠르게 얘기할 수 있다. 실제로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했을 때 전화를 걸어 함께 해결하기도 했다. 오히려 대면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루어진 의사결정이 공유되지 않았을 때 정보 격차를 만들기도 한다.
성과
원격 근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주로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매니저들은 작성한 코드라던가 오늘 등록한 Pull Request 같은 일을 했다고 증명할 결과물(outcome)이 없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IC보다 매니저들이 원격 근무에 소극적이다. 구성원들을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소통할 수 있어야 신뢰 관계도 쌓고 적절한 피드백도 줄 수 있다 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실제로 원온원을 할 때는 구글밋을 통해 하는 것보다 오피스에서 만나 커피라도 한 잔 하며 이야기하는 것을 선호했다.
밍글링
팀원 간 관계 형성은 중요하다. 어찌 보면 정치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정치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한 정치가 있으며 의사결정의 기준이 정치가 되면 안 될 뿐이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정치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관계가 좋으면 원만히 해결될 문제가 좋지 않은 관계로 인해 해결될 일도 해결하지 못하고 일이 진행되지 않는 경우를 봤다.
일의 처리 뿐만 아니라 팀원들간의 관계는 구성원의 리텐션에도 영향을 준다. 근속 년수와 구성원의 생산성은 어느 정도 상관 관계가 존재한다.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일터에서 행복도를 높이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소속감을 필요로 하고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적절한 라포 형성을 위해서라도 오프라인 환경은 필요하다.
처방
앞서 문제로 진단한 것들은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인식
원격 근무가 '복지'가 아니라 일하는 장소의 차이라고 생각하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원격 근무가 폐지될 때 '우리가 일하는 방식이 바뀌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회사가 너희에게 주는 혜택 중 하나가 사라졌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다르다. 회사에 출근하던 집에서 일하던 하는 것은 똑같은데 직원 입장에선 괜히 손해보는 느낌을 준다.
커뮤니케이션
개선하기 앞서 불필요한 동기 커뮤니케이션을 없애는 것이 우선이다. 그럼에도 필요한 동기 커뮤니케이션을 원격으로도 가능하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5명 회의에서 4명이 오피스에 있고 1명이 원격이라면 회의를 따라가기 힘들다. 가끔 마이크에 수음이 되지 않기도 하고 화이트 보드를 사용하면 카메라가 제대로 따라가기 힘들다. 이러한 것들이 해결되어야 원활한 원격 근무가 가능하다. 물론 모두가 오피스에 있을 때 회의를 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러면 회의를 해야 하는 날이 정해지고 일의 속도가 느려지게 된다.
이젠 남아 있는 비동기 커뮤니케이션을 더 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그러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을 문서화한다. 문서를 어떻게 잘 작성할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며 필요한 문서를 제 때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조직이 커지면 커질수록 정보는 흐르지 않고 고이게 된다. 아무리 문서를 많이 쓰더라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썩게 되고 필요할 때 찾지 못해 흐르지 않으면 없느니만 못하다.
암묵적 의사결정을 잘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피스에 있는 사람끼리 구두로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원격 근무 대상자가 그 의사결정을 놓치게 되면 그만큼 손실이 발생한다. 회의 내용을 정리하여 공유하는 것처럼 비공식 대화를 통해 결정된 의사결정이 잘 공유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스케줄링
무조건 ASAP 일정이 아니라 태스크에 대한 일정 산정과 회의 시간 스케줄링이 필요하다. Mature Engineering에서 이야기 했듯이 일정은 한번 정하면 무조건 지켜야 하는 법이 아니라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이라고 이야기했다. 합의된 일정이 있다면 그 스케줄에 맞게 자신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방식으로 근무하면 된다.
혼자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그 시간에 하지 않아도 되며 예상치 못한 상황을 대비하여 팀원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시간대이다. 어쩌다 가끔 있는 개인적인 잡무 처리를 위해 휴가를 쓰는 것만큼 짜증나는 일은 없다.
마무리
원격 근무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해봤다. 오피스 근무를 우선하되, 필요할 때 알아서 원격으로 근무하는 것이 두 가지 장점을 모두 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기본적인 제도만 만들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채용인데,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야 일이 잘 굴러간다.
일과 삶, 한 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도 무너진다.